[게.이.머] 블리자드VS.핵, 엎치락뒤치락 고소 전쟁①

2016-03-11 17:58
수많은 게임들이 플레이되는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벌어집니다. 게임 내 시스템, 오류 혹은 이용자들이 원인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은 게임 내외를 막론한 지대한 관심을 끌기도 합니다.

데일리게임은 당시엔 유명했으나 시간에 묻혀 점차 사라져가는 에피소드들을 되돌아보는 '게임, 이런 것도 있다 뭐', 줄여서 '게.이.머'라는 코너를 마련해 지난 이야기들을 돌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게.이.머'의 열 일곱 번째 시간은 전 세계적으로 넓고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게임 개발사 액티비전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와 '핵'으로 알려진 비인가 불법프로램과의 전쟁을 다루려 합니다. 블리자드가 비인가 불법 프로그램의 근절을 위해 진행한 이 전쟁은 지난 2006년부터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블리자드는 온라인 게임 위주의 대작들을 주요 라인업으로 갖추고 전세계 이용자들에게 서비스하고 있는 만큼 핵 등의 불법 프로그램의 도전을 수도 없이 받아왔는데요. 스스로 개발한 게임에 대한 권리이니만큼 당연히 승소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패소하기도 하고 핵 제작자로부터 역고소를 당하는 등 고비도 많았습니다.

블리자드가 걸어온 핵과의 전쟁에 대한 역사를 지금 살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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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서막, 첫 터치는 젠틀하게

지난 2008년 3월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WOW)를 개발, 서비스하는 블리자드는 게임 내에서 몬스터를 잡고, 레벨업 및 아이템 획득을 자동으로 하게 해주는 봇(Bot) 프로그램인 'MMO Glider'의 제작자를 고소했습니다.

그 과정이 상당히 흥미로운데요. 블리자드가 고소하기전에 해당 봇 프로그램 개발사가 먼저 블리자드를 고소했기 때문입니다.

'MMO Glider'는 Lavish 소프트웨어의 'EQplaynice'라는 '에버퀘스트' 봇 프로그램의 제작업체인 Lavish 소프트웨어가 MDY와의 계약으로 'EQplaynice'를 포함해만든 봇 프로그램인데요. 'MMO Glider'는 법원 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10만개 이상이 판매되는 등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실 프로그램 자체는 'WOW'가 출시된 2004년 11월 이후 몇 달 지나지 않아 풀렸는데요. 블리자드는 2006년이 되어서야 봇 프로그램 제작사에 대해 대응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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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 관련 프로그램을 판매 중인 홈페이지

블리자드는 비벤디와 블리자드 고위 임원과 변호사를 대동하고 해당 봇 프로그램의 프로그래머인 마이클 도넬리의 집에 직접 방문했는데요. 회사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프로그래머를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눴습니다.

블리자드 측은 봇 프로그램이 우선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을 위반했으며 자사의 게임 내 경제를 망치고 이용자들에게 박탈감을 부여해 게임을 망치고 있다며 저작권을 위반하며 봇 프로그램 팔아먹는 일을 즉시 중단하라고 말했죠. 또한 현재까지의 수익금은 자사의 게임인 'WOW' 덕분이므로 모든 수익금을 토해내라고 전했습니다. 이를 이행한다면 소송 없이 합의로 일을 마무리 하겠다는 말과 함께요.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은 1998년 10월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저작권보호를 모색하기 위해 제정된 법으로 온라인저작권을 강화하고 이를 방해하는 기술개발을 불법화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는 법입니다.

◆이건 내 권리라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 말을 들은 MDY 측은 겁을 집어 먹은 것도 아니고 도망을 친 것도 아닌 화를 냈습니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적정 계약으로 팔겠다는데 블리자드가 그걸 금지할 권리는 없다. 이건 권리침해다. 게다가 블리자드가 통보한 내용은 협박과 공갈이다"하고요.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와 관련한 글들이 올라오며 점차 알려지고 있을 무렵.2006년 말 MDY는 비벤디와 블리자드를 고소했습니다. 사유는 권리 침해였습니다.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판매할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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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방법원

하지만 이 소송의 담당 법원이었던 애리조나 연방법원은 해당 소송을 일단 보류 처리합니다. 여러 사유가 있었겠지만 보류 처리된 것이 중요했죠.

그리고 얼마 후 블리자드가 MDY가 건 소송과 관련해 Lavish소프트웨어의 대표인 Joe Thaler의 소환을 요구하며 Lavish소프트웨어와 MDY간의 거래 내역, 대표끼리의 대화 내역, 보유 및 거래한 'WOW' 계정목록 등의 사건과 관련된 파일을 모두 가져오라고 요청하죠.

그런데 Lavish소프트웨어의 대표 Joe Thaler는 이를 모두 무시합니다. 블리자드는 요청 무시를 이유로 소송을 걸었죠. 봇 프로그램 문제에서 시작된 사건은 소송 대 소송으로 번져 맞소송을 진행하는 국면으로 치닫게 됩니다.

◆시작된 소송 전쟁, 승자는 당연히?

그런데 이 첫 소송에서 블리자드가 패소해버렸습니다.

패소 이유는 블리자드가 요구한 자료들이 너무 과했다는 법원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거의 기업 기밀과 고객 신원 등의 개인 정보까지 담고 있는 자료를 요구했기에 개인 정보 유출에 민감한 미 법원으로써는 Lavish소프트웨어의 거부에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죠.

게다가 블리자드가 자료 제출일로 정한 날짜도 너무 짧았습니다. 단 9일 동안 저런 자료를 다 모은다는 건 모든 업무를 멈추고 자료 수집에만 올인해도 모자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죠. 해서 법원은 Lavish소프트웨어의 거부를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블리자드는 2008년 3월 진행된 대 소송 전쟁의 1차전에서 패배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북미 반응이 참 재미있는데요.

요즘의 이용자라면 당연히 저작권 침해에 대한 처벌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피해를 받은 사람도 많고 게임성과 게임 내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니 당연히 처벌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용자가 대다수 일 텐데요. 당시에는 'WOW'의 맵이 이렇게 광활한데 무슨 문제냐 오토 몇 마리 쯤 잘 보이지도 않는다는 반응 및 자신은 피해 본 적 없으니 괜찮다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으로써는 개념 없다는 소리 듣기 딱 좋은 발언들이 주를 이었던 것인데요. 게임 업계에서 일어났던 저작권과 관련한 다양한 사건들을 겪은 이용자들의 저작권에 대한 의식도 많이 변화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최종 승자 결정, 정의는 승리한다

그리고 같은 달 2008년 3월 패소 직후 블리자드는 바로 MDY에 소를 제기합니다. 다시 한번 맞소송에 나선 것이죠. 이렇게 MDY가 예전에 제기해 보류 처리됐던 권리 침해 소송과 블리자드가 새로 제기한 소송이 맞붙어 본격적인 법원 소송 절차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치열한 법정 공방을 진행한 양사였지만 승기는 점차 블리자드에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비벤디 등의 대형 미디어 그룹에 소속된 변호사들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죠. 반면 MDY는 장기화되는 분쟁에 점차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4개월이 지난 2008년 7월. 애리조나 연방법원은 블리자드의 손을 들어줍니다. 1차 판결에서 연방법원은 무려 6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는데요. MDY는 당연히 항소에 임했지만 2009년 1월말 2차 판결도 블리자드가 승소합니다.

블리자드는 이 일 이후 불법 프로그램과 관련한 이용자 약관을 몇 차례 변경하는 등 또 다시 발발할지도 모르는 봇 프로그램과의 전쟁을 대비하기도 했습니다.


심정선 기자 (narim@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