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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게임사전 편찬에 대한 의의 그리고 아쉬움

심정선 기자

2016-07-05 14:23

조선시대, 많은 사람들이 바둑을 즐겼지만 바둑에 대한 선비들의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태종 13년(1413) 내시 송지도와 약방의원 이헌이 창덕궁에서 바둑을 두다 적발되어 옥에 갇혔다가 사흘만에 풀려났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왕과 세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태종 16년(1416) 바둑 때문에 세자(양녕대군)와 동생 충녕대군(세종대왕)이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태종 이방원의 아들 충녕대군(세종대왕)이 세자인 양녕대군과 함께 절에 와서 신의왕후(태조 이성계의 부인 한씨)의 제사를 올리고 돌아가다 앙녕대군이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을 보고 "군자가 할 일이 아니다"라며 말린 기록이 있다. 양녕대군은 충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바둑을 두었고 결국 태조 이방원에게 들켜 크게 꾸짖음을 당했다.

인조 2년(1624) 11월 21일에는 일본에서 바둑판을 보내왔는데 신하들이 '바둑은 직책을 부지런히 수행하는 사대부도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물건인데 구중궁궐에 둘 수는 없는 일'이라며 돌려 줄 것을 간청하는 모습도 보인다.

지금 바둑이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와 비교하면 굉장히 생소한 모습이다. 당시에는 관련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도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여겼다. 바둑이 받았던 사회적 취급이 현재의 게임이 받고 있는 것과 유사해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지만 대놓고 즐긴다고 할 수 없는 사회 풍조가 지금 게임이 받고 있는 취급이 굉장히 비슷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랬던 바둑이 현재는 굉장히 고상하고 높은 지적 수준을 갖춰야 즐길 수 있는 고급 스포츠로 조명되고 있다. 오랜 시간동안 대중과 점차 친숙해지며 쌓아온 이미지가 효과를 낸 것이다.

이런 모습이 지금의 게임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이를 위한 첫 걸음으로 지난 달 28일 엔씨소프트문화재단의 지원하에 국내 첫 게임사전이 발간됐다.

게임사전 편찬의 의미는 게임 언어를 공식화했다는 것에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사전을 대표 집필한 이화여대 이인화 교수의 말처럼 게이머를 '공식적인 언어'를 쓰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존중하지 않았기에 게임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나쁠 수 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공식적인 지식이 될 가능성을 높이는 수단으로써의 사전이라는 뜻이다.

멀리보면 이를 통해 이미 대중화된 게임을 공식적인 문화로 승격 시키겠다는 포부다. 굉장히 좋은 뜻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 또한 많다. 우선 윤송이 이사장의 제작발표회 불참이 있다. 게임사전은 재단이 1년 반이라는 긴 시간과 2억 원 가량을 투입한 대형 프로젝트다. 거의 숙원사업급으로 주력했던 프로젝트인 만큼 지난 달 장애인 의사소통 지원앱이 '대상'을 수상했을 당시, 시상대에 직접 올라 기조 강연까지 진행했던 모습과 대조돼 더욱 아쉽게 생각된다.

엔씨소프트재단은 그 날의 주인공인 게임사전에 모든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기획, 편찬, 재정후원의 역할인 재단의 이사장보다는 집필자와 사전의 내용이 주인공인 자리라 판단해 영상 인사가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것. 충분히 납득 가능한 이유지만 재단이 게임사전에 들인 공만큼 무게를 실어주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또 하나는 모두 같은 학과 소속인 집단에서 집필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집필진 62인이 모두 같은 학과의 선후배 관계인 곳에서 서로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갈등하며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기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끝으로 사전의 구성이다. 표제어 선정 자체이 온라인 게임에 편중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그 뒤의 대표적 게임 소개 부분은 현재도 논란이 일고 있는 부분이다. 시대별로 각 게임을 나눈 뒤 다시 가나다라 순서로 되어있다.

그런 것 치고는 시대를 대표하는 게임이라기에는 아쉬운 선정이 몇몇 있었고, 분량적인 부분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대부분의 게임이 1.5 페이지의 분량으로 간단하게 소개돼 있는데, '리니지'는 4 페이지인데 비해 '하프라이프', '도타', '큐플레이'는 1페이지인 식이다.

1년 반여의 집필 기간 동안 최근 5년 전후의 게임계를 메인으로 삼아 집필해 온라인 게임이 주가될 수 밖에 없었고, 현재 이용하는 이용자가 많은 게임의 분량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는 이화여대 이인화 교수의 말을 십분 이해해도 '최초'라는 의미를 온전히 담기에는 심히 아쉽다.

엔씨소프트 이재성 전무도 이번 사전 편찬을 '물꼬를 텄다'는 의미로 이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으며 개선해나갈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또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후 개정판을 통해 여러가지를 보강하겠다고 밝힌 만큼 최초에 걸맞는 퀄리티를 갖춰나갔으면 한다.


심정선 기자 (narim@dailygame.co.kr)

심정선 기자

narim@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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