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의 유럽에서 게임 개발하기①] 바이킹 정신이 깃든 북유럽 개발 문화

2022-08-12 18:42
데일리게임이 2022년 하반기를 맞아 새롭게 준비한 '홍성민의 유럽에서 게임 개발하기'는 메카닉 액션게임 '어썰트', '레이크래쉬' 등을 개발한 개발사 코디넷 대표 출신의 홍성민 메타코어 게임즈 기술 총괄이 핀란드에서 개발자로 일하며 경험한 일과 느낀 점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코너입니다. 한국, 혹은 아시아와는 다른 유럽의 개발 문화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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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를 대표하는 모바일게임 개발사 슈퍼셀. '클래시오브클랜', '브롤스타즈' 등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게임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글=홍성민 메타코어 게임즈 기술 총괄] 자일리톨의 나라. 전 세계 어디라도 산타클로스 수신으로 보내는 우편물들이 실제로 도착하는 나라. 가구 수보다 많은 사우나를 가진 '사우나'라는 단어의 발상지. 백야와 오로라의 나라. 리눅스의 고향이며 한 때는 노키아(Nokia)라는 글로벌 브랜드를, 지금은 슈퍼셀(Supercell)과 로비오(Rovio)라는 모바일게임 거인들이 있는 나라. 핀란드를 가볍게 소개할 수 있는 문구는 많습니다.

4년 전 계획에 없이 갑작스럽게 유비소프트(Ubisoft) 핀란드 스튜디오로 이직하게 되면서 적도 위 싱가포르에서 국토의 1/3이 북극권에 들어있는 핀란드로 이사오게 됐습니다. 유럽 생활이 처음도 아니었지만 서유럽과는 또 다른 북유럽에서의 생활은 하루 하루 색다름의 연속이었고, 다행히도 이제는 가족 모두 안정적으로 정착해 이렇게 북유럽에서의 생활을 나눌 수 있는 기회까지 갖게 됐네요. 핀란드에서의 4년이 지난 지금은 메타코어 게임즈(Metacore Games)라는 회사의 기술 총괄(Tech Lead)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북유럽하면 많은 사람들이 바이킹을 떠올리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핀란드는 바이킹이 세운 나라는 아니지만 그들의 문화를 바로 옆에 두고 있죠. 또한 핀란드는 러시아와 가장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러시아와는 전쟁도 하고 교역도 하면서 미묘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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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은 전성기 시절 유럽 전역에 걸쳐 세력을 넓혔다(사진 출처='한눈에 꿰뚫는 세계사 명장면' P.130).
세계사의 전면에 나오지는 않은 바이킹이지만 전성기 때에는 정말 멀리까지 그들의 영역을 넓혔습니다. 바이킹 일족이 배를 타고 넘어와 건설한 작은 요새에서 시작한 러시아는 한 때 아시아 대륙을 넘어 북미의 알라스카까지 직접적인 영토로 하고 있었죠. 그들은 또 북극해의 거칠고 차가운 바다를 건너고 아이슬란드를 거쳐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인 그린란드도 개척했고, 콜럼버스보다도 약 500년 전에 이미 북미 대륙에 도착해 마을을 건설했다고 합니다.

이런 탐험과 여정은 그들이 누군가를 폭력적으로 정복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바이킹은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목축을 하며 마을을 개척하고 농지를 개간하며 열악하고 척박한 자연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을 위해 새로운 개척에 나섰다고 합니다. 북극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인 그린란드도 이들이 새로운 마을을 만들고 경작하기 위해 찾아 도착한 곳이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범죄와 추방, 속임수와 약탈, 그리고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포함된 구전의 역사이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바다를 건넜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뜬금없이 바이킹의 탐험과 개척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제가 핀란드 사람들과 회사에서 발견한 독특한 문화와 사고방식을 만들어 낸 것이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북유럽 게임 회사에서의 제 경험들을 하나씩 이야기해 나가려고 합니다.

최근에 제가 있는 팀에서 이미 작동 중인 시스템에 추가적인 기능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들 쉽게 생각하고 접근했죠. 이미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이었고, 요구 사항도 그리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진행을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막히게 됐습니다.

조금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일반적인 수식을 변수들과 같이 입력하고 그것을 분석해 수식에 맞춰 모든 계산을 한 다음 그 결과를 돌려 주는 것이었는데, 수리적인 계산만이 아닌 논리적 계산도 가능해야 했으며 다양한 형태의 조건식과 함수식도 처리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변수의 데이터는 어떤 것이 올지 모르니 가능한 모든 종류의 데이터를 다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수식과 별도로 처리돼야 하는 상황이었죠.

처음에는 해당 기능을 직접 구현하려고 했지만 설계를 진행하면서 요구사항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직접 구현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했죠. 게다가 직접 만든다고 해도 정말로 모든 상황에서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것만도 너무 오래 걸릴 위험성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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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은 팀 내에 즉시 공유됐고, 다들 해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한 팀원이 깃허브(Github)에 있는 프로젝트 하나를 적용해 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을 해 왔죠. 모두들 그 프로젝트의 평판을 조사하고, 예제를 실행시켜 보면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봤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해당 오픈 소스의 사용 범위 등도 모두 검토됐습니다. 그리고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우리 시스템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바로 적용을 하게 됐습니다. 자칫 며칠에서 몇 주가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 몇 시간 만에 해결된 것이죠. 물론 그 몇 시간 안에 해당 깃허브 프로젝트의 코드를 모두 보고 위험 요소를 파악하거나 장기적인 가능성까지 모두 파악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계속 진행되는 개발과 테스트에서 같이 검증될 수 있다고 모두 동의했기에 해당 오픈소스를 사용하기로 쉽게 결정했던 것입니다.

서구 개발자들이 오픈소스에 더 적극적이고 다른 사람의 코드를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이 한국보다 덜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나라마다, 혹은 회사마다 오픈소스를 활용하는 수준의 차이는 있었는데 핀란드의 회사들은 서구권의 다른 곳보다도 더욱 적극적이고 개방된 분위기로 오픈소스를 활용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저도 예전에는 제가 직접 제작한 코드가 아니면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의 결과물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활용을 할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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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허브 사용자 수와 프로젝트 수(출처=깃허브 홈페이지).
이러한 오픈소스의 사용과 다른 사람의 결과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한 편으로는 탐험(깃허브에 올라오는 무수히 많은 코드들과 그것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과 개척(다른 이의 코드를 적극 반영하고 내것으로 만들어 사용하는)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탐험과 개척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제한적인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이고 실용적이어야만 했던 바이킹 생활 문화와 닿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에 공유와 협력의 분위기가 같이 기반이 돼 서로 큰 시너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픈소스의 사용과 타인과의 협력을 통한 결과물의 공유 그리고 그것을 통한 시너지의 효과는 어쩌면 자원도 사람도 경험도 모두 부족한 환경에서 슈퍼셀, 로비오, 레미디(Remedy) 등의 유니콘들이 생겨나고 리눅스와 같은 전 세계를 움직이는 기반 운영 소프트웨어, 노키아와 같은 실용적인 제품들을 만들 수 있는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서로 협력하고 아름다운 조화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강한 경쟁도 있습니다. 다만 이 경쟁은 서로를 상대적으로 이기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절대적으로 나은 결과를 만들려 하는 경쟁입니다. 특히 공개적이고 투명한 경쟁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는 것도 핀란드의 게임 개발사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 중 하나입니다.

핀란드에서는 한 회사의 제품이 어떤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거나 성공을 하게 되면 그 성공과 경험을 개방된 분위기에서 편하게 공유합니다. 경쟁사를 적대시하거나 우리 것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험과 배운 점들을 공유하고 서로 토론을 통해 개선과 발전을 도모 합니다. 그러면서 각자의 방법으로, 형태로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제품에 덧입히고 녹여 내어 더욱 발전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로 모여 의견을 주고 받으며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경쟁하는 것이죠. 물론 남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차용하면 크게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공개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나만의 새로움을 얹는 것은 같이 성장 하면서도 다양한 발전을 만들어 내는 결과가 됩니다. 어쩌면 이런 경쟁이 우리가 말하는 선의의 경쟁 아닐까요?

북유럽에 와서 제가 처음 느꼈던 그리고 자주 느끼는 업무 문화를 간단히 이야기해 봤네요. 앞으로 하나씩 이곳의 특징적인 혹은 색다른 점들을 저의 관점에서 풀어 보려고 합니다.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가끔은 한국도 이러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 가끔은 그래도 한국이 낫다는 생각도 들지만 지구 반대편의 거리 만큼이나 멀고 다른 곳임을 생각하면 이들의 방식과 문화도 이들의 입장에서는 지금 시점의 최선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언제나 다른 것들을 보고 배우고 익히는 것은 참 재미난 것 같습니다.

정리=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